“이제 나의 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달빛이 비추는 어느 날 밤, 열 일곱살 소년 알런 스트랑(류덕환 분)은 신의 눈을 찔렀다.
죄를 지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사랑했던 신을 죽어버린 것이다.
소년의 신은 바로 에쿠우스, 말(馬)이었다. 연극 [에쿠우스](연출 조재현)는 잔혹한 행동을
저지른 어린 소년의 비극을 통해, 그를 안아주지 못하는 사회를 차갑게 비춘다.
항상 무난하고 평범한 것만을 권유하는 사회.
그 속에서 소년이 꿈꾸는 원시세계는 처참하게 짓밟힌다.
말을 사랑한 소년, 그 만의 세계 여덟 마리 말의 눈을 찔러버린 소년.
그에게 정신병원에서의 치료가 내려진다. 그를 감싸주어야 할 부모도 그를 멀리한다.
오로지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트만이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소년은 말을 사랑했고, 숭배했다. 마구간, 소년에겐 신전과도 같은 곳.
웅장한 음악과 함께 무대 벽이 열리고 에쿠우스(말)가 등장한다.
8명의 배우가 에쿠우스 분장을 하고 군무를 펼친다. 하늘을 향해 높이 발길질하는 에쿠우스는
소년에겐 환상적인 존재이자 절대적인 존재다. 즉, 그에겐 에쿠우스가 곧 예수다.
매일 밤 그는 에쿠우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의 털을 쓸어내린다.
말 앞에서 그는 순한 어린 양이 된다.
하지만 그는 마구간에서 질 메이슨과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그는 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불경한 죄를 지었다며 반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윽고 마구간으로 에쿠우스가 걸어들어오고,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에쿠우스가 모든 것을 보았다는 참을 수 없는 죄책감에 쇠꼬챙이를 마구 휘둘러댄다.
소년이 존재할 수 있는 힘, 바로 에쿠우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미치광이 취급한다.
사회에서 그는 악마일 뿐이다.
알런의 아버지는 말을 타며 좋아하는 알런에게 “바보 같은 짓”이라며 아들을 무시했고,
어머니도 “악마가 깃들였어”라며 뒤돌아섰다.
이렇게 연극은 획일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힌 어른들을 등장시켜, 그 속에서 돌봄 받지 못한
어린 소년의 아픔을 찬찬히 드러낸다.
하지만 그를 치료하겠다고 나섰던 의사 마틴 다이사트는 곧 그를 이해하고 죄책감에 빠진다.
지금껏 치료라는 명분으로 모든 아이들의 개성을 파괴시켰던 자신의 행동에 괴로워한다.
게다가 열정적으로 자신만의 원시세계에 빠진 소년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정상적인 것이란, 아이의 눈 속에 웃음이 있는 것이다.”
마틴을 통해 소년의 행동은 미친 짓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소년이 꿈꾸는 특유의 원시세계를 지워버린다면, 이 소년은 유령이 되고 마는 것이다.
소년은 에쿠우스를 사랑해야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