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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의 통금시간을 지켜주기 위해 골목길을 내달리던 CF 속 주인공이었을 때부터 성립된
'고수=바른 생활 청년'이라는 공식은 데뷔 15년 차를 맞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요즘 그의 행보를 지켜보면 어쩌면 우리가 그에 대한 답을 너무 쉽게 내려온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무작정 '착하지 않은' 고수가 아닌, 실제 자신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는 배우, 고수의
진짜 모범 답안을 찾아 나섰다.
꾸미지 않은'나'를 담아 완성해낸 캐릭터

배우 고수(36)는 '조각 미남'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배우다.
그래서 별명도 '고비드(고수+다비드)'다. 마주 앉아 있을 땐, 앞에 있는 얼굴이 실물인지
포토샵으로 매만진 사진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이 잘생긴 배우는 외모에만 기대지 않았다. 멜로, 스릴러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했다. 드라마 '피아노'에서는 얽히고설킨 가족 관계 속에서 개성 있는
인물을 만들어냈고, 영화 '백야행'과 '초능력자'에서는 음울한 내면의 연기를 보여줬다.
한국전을 배경으로 한 '고지전'에서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해가는 인간상을 다채롭게
표현해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반창꼬'에서는 좀 더 현실적인 모습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강일은 아내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마음을 닫아버리고 산다.
처지를 비관해 자살 소동을 벌이는 취객에게 "무슨 술을 대낮부터 이리 자셨어"라고 타박하고,
욕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나이다. 잘생긴 외모만 봐서는 절대 읽을 수 없는 고수의 연기와
삶을 직접 들었다.
와, 정말 하나도 안 변했어요.
얼굴이 쭈글쭈글해졌어요. 인터뷰하느라 말 많이 해서 더 그런 것 같아요(웃음).
영화 '반창꼬'의 강일은 지금까지 본 캐릭터 중에 제일 재밌는 인물이었어요.
촬영장에 놀러 가는 기분으로 편하게 찍었어요.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보고 있으면 정기훈 감독님이
와서 "너 무슨 시나리오를 보냐"라며 민망할 정도로 타박하셨어요. 시나리오를 가져가는 게 눈치가
보일 지경이어서 아예 안 가져갔어요. 대사와 기본적인 감정만 숙지하고 현장에 갔죠.
그리고 강일이가 현실적인 인물이라 꾸미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감독님은 일상적인 모습을 담아내길
바랐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욕을 잘해서 신기하면서도 통쾌하더라고요. '에이 XX' 같은 대사는 일상처럼
자연스럽던데요(웃음).
연습을 많이 했어요. 드라마에서는 (심의 때문에) 욕을 못하니까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얼마 전에 본 희곡에 욕이 살벌하게 있었어요. 읽기만 했는데도 '이런 욕이 있구나' 할 정도로 재밌었어요.
읽다 보면 억양과 강세가 생기는데 주변 사람들이 움찔움찔할 정도였죠. 연극이나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욕이지 저는 실제로는 욕을 잘 안 해요. TV 광고에도 '바른 말 고운 말'이라고 나오잖아요.
가끔 중·고생들을 만나보면 대화의 대부분이 욕이더라고요. 정말 이해가 안 되는데, 뒤돌아 생각해보면
저도 어렸을 땐 욕을 했던 것 같긴 해요.
무덤덤하면서도 다정한 '보통 남자'
고수에게는 착하고 선한 모습과 다소 엉뚱한 모습이 혼재돼 있다. "욕할 일이 없어서 욕을 안 한다"라는
말을 할 때는 '모태 바른 생활 사나이'의 풍모를 풍겼다가도, 촬영이 끝나면 동료 배우들과 축구나 축
구 게임을 했다고 말할 땐 영락없는 보통 남자라는 생각도 든다.
아내와 사별하고 마음을 닫고 살다가 새로운 여자(한효주 분)에게 마음을 열고 상처를 치유하는,
어떻게 보면 아주 복잡한 인물인데요. 어떤 면에 포커스를 두고 연기했나요?
강일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시나리오를 봤을 때보다는 연기를 하면서 더 마음에 와 닿았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상황에서 새로운 사랑이 마음을 두드리는데, 언제쯤이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낸 슬픔이 어떤 걸까, 사별은 정말
슬픈 일인데 강일이는 새로운 사랑이 왔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깊었어요. 촬영 중간에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하는 걸 깨달았죠. 영화 속 설정으로만 보기에는 사별은 정말 큰
슬픔이었어요. 관객들 중에서도 비슷한 처지에 놓인 분이 있을 수 있고, 또 사별이 아니더라도
의도치 않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 있잖아요. 영화 속에서 죽은 아내의 추억이 있는 포장마차
의자를 껴안고 우는 장면이 있는데, 처음엔 웃기더라고요. 그런데 강일이 입장에서 다가가니까
무척 슬펐어요. 관객들에게는 재미있는 신으로 보여졌지만 강일이에게는 슬픈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이죠.
영화 속 강일과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씩 꼽아주세요.
제가 강일이를 연기했으니 거의 저나 다름없죠. 영화 안의 설정이라 비슷한 점을 찾기 힘들지만 저도
방황할 때는 무모한 면이 많았어요. 들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요.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불안정하던 시기도
겪었고요.
그런 시기는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시간이죠.

또래 연기자들이 많아서 촬영장 분위기는 즐거웠겠어요.
지방 촬영 가서는 숙소에서 함께 생활했죠. (마)동석이 형은 비슷한 시기에 영화 '이웃사람'을
찍고 있어서 좀 바빴지만 게임도 하고 축구도 하면서 재밌게 지냈어요. 한 방에 모여 편 나눠서
위닝일레븐을 하는데, 돈 2천원씩을 모아놓고 한 골 넣으면 "우와" 하면서 좋아하고 그랬어요.
(마)동석이 형이랑 (김)성오가 실력이 좋아요.
나의 길, 연기를 통해 홀가분해지다
고수는 영화 초반에 병원에서 죽은 아내의 시신을 안고 우는 장면에서 감정의 폭발 정도를 두고
고민했다고 말했다. 지난 사랑이 중요한지, 앞으로 다가올 사랑이 중요한지를 두고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결론적으로 다가올 사랑에 무게를 더 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오열하는 것보다는
슬픔을 억누르면서 울었다. 지난 사랑에 대한 슬픔은 새로운 사랑을 맞을 수 있을 정도만 재단해
연기할 정도로 정확한 연기를 한다. 모범생 타입의 연기자라는 생각이 스친다.
CF나 평소 모습 때문에 바른 생활 이미지가 강해요. 그런 이미지 때문에 힘들지 않나요?
그렇지 않아요. 제가 편할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아침 일찍 촬영이 있으면 그 전날 일찍 자는 게
몸과 마음이 편하니까 그렇게 할 뿐이에요. 몸이 편해야 하잖아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 당연한
거예요(웃음). 어떻게 보면 저는 약간 드라마틱한 직업을 갖고 있잖아요.
작품 안에서의 삶은 드라마틱하니까 일상에서는 평범하게 지내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작품에서는
너무 스펙터클하니까요.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면 어떻게 보내세요?
쉬는 날엔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봐요. 여유가 있으면 여행을 가죠. 우리나라에 여행 갈 데 정말 많잖아요.
멀리 찾을 필요도 없이 집 주변만 가봐도 얼마나 재밌는데요.
말수가 적은 편이라 그런지 조용한 취미생활을 즐기시는 것 같아요.
저도 제가 말수가 적은지 몰랐는데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 출연했을 때 모습을 보고 알았어요.
제가 원래 말하기 시작한 게 늦었대요. 네 살 때인가 옹알이를 했고, 그전까진 말똥말똥 쳐다보기만 했대요.
어머니는 제가 말 못하는 줄 알고 걱정 많이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도 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누가 먼저 말 걸면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졌고, 중학교 땐 말을 좀 더듬기까지 했어요.
튀는 것도 안 좋아했죠.
말로는 잘 못하는 자기표현을 연기로 하시나 봐요.
연기 치료라는 게 있잖아요. 역할극 같은 걸 통해서 서로 사이가 좋아지기도 하는 모습을 TV에서 봤는데
그게 이해가 돼요. 저 역시도 연기를 하면서 (나를) 표출하게 되고 일상이 좀 더 편해졌어요.
사람이 누구나 배배 꼬일 때가 있는데 연기를 하면 조금 홀가분해지는 느낌이에요.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얼굴이 날카로워요.
연기 덕분에 인생이 바뀐 거네요.
막연한 꿈은 있었지만 원래 연기자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연기라는 게 하면 할수록 새로운 게
느껴져요. (공익근무 요원이었던)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연기를 못했는데, 그때는 힘들었고 방황도
많이 했어요. 나를 표현할 수단이 없으니까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때부터 '연기를 안 하면 내가 힘들구나',
'아플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전까지는 이 길이 내 길인가 고민도 했었는데 2, 3년 정도 일을
놓아야만 했던 시기를 보내고 보니 연기의 소중함을 느꼈죠. 그 뒤에는 급하게 가지 않고 즐겼어요.
그렇다면 연기를 처음으로 꿈꾼 건 언젠가요?
처음에는 형이 추천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형이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때인데 제가 공연을 한다고 보름
동안 집에 안 들어가고 그랬었죠. 형이 관심이 있으면 도전해보라고 콘테스트 응모를 권한게 데뷔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렇게 시작하고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연기는 하면 할수록 새로워요.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역할을 했는데, 또 도전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코미디를 해보고 싶어요. 남자들 많이 나오는 영화도 하고 싶고요. 사실 변화나 도전보다는 (연기하는)
작업 자체가 재밌어요. 준비하는 과정부터 촬영하는 것, 촬영 현장이 참 좋고 또 편해졌어요.
예전에는 좀 어려웠는데 군 생활하고, 연기에 대한 갈증이 더해진 뒤에는 촬영하는 순간들이 무척
즐거워요.
자신에게 연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한 공백기 이후, 그는 곧바로 연극 무대로 직행해
기본기를 다시 닦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그리고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로 '고수앓이',
'고비드'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때도 "아직 나는 연기 영점(零點)에 서 있다"라고 겸손해했다.
영화 '초능력자', '고지전'으로 어느 정도 흥행 배우의 반열에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고수"라고 부르면 민망하다는 그는 "고수가 아니라 그냥 수로 불러달라"라고 당부했다.
고수는 인터뷰 내내 "인터뷰는 나의 기록을 남기는 거니 솔직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동안 여러 번 고수를 만났지만 그는 만날 때마다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미로 같은 배우다.
그런 다양한 모습이 여러 가지 캐릭터로 만들어져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고수는 천생 배우다.
연기에 대한 열정도 진심으로 느껴졌다.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여러 작품을 통해 이전에 알지 못했던
고수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져본다.
■기획 / 이연우 기자 ■글 / 박은경 기자(경향신문 대중문화부) ■사진 제공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