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물씬…밑바닥 인생의 정겨움

친구를 잘 둔 덕분에 주말도 아닌데 공연을 보게 될 기회가 생겼습니다. 공연명은 ‘돌아온 엄사장’. 인기스타 고수가 나온다고 하여 얼핏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나 약간은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대학로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수많은 여성관객들로 북적거려 조금은 당황했습니다.

극의 줄거리는 대체로 간단했습니다. 울릉도에서 살던 엄사장이 권력의 맛을 조금 본 후 그게 참 좋았던지 포항으로 거점을 옮겨 ‘별 것 아닌’ 선거판에 다시 뛰어들고 그 과정에서의 좌충우돌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잘생긴 고수는 ‘엄고수’, 엄사장의 막내아들로 세상 살기 귀찮고 불만만 가득한 까칠한 청년입니다.

극은 전반적으로 유쾌했습니다. 포항 사투리가 구수하고 진득하게 배어나오고 거침없는 욕설은 저에게 큰 웃음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중간에 긴장감을 주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장면도 있고 연민을 자아내게 만드는 요소도 있어 강약조절이 괜찮네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극의 흐름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등장 인물들이 참 좋았습니다. ‘돌아온 엄사장’에 나오는 인물들은 누구하나 평범한 사람이 없습니다.

정신건강을 강조하는 임산부, 카드로 결제하는 관광객들을 증오하는 버스기사, 티켓다방을 운영하는 경찰관 등. 우리가 흔히 영화나 소설 등의 픽션에서만 접하는, 소위 밑바닥 계층으로 표현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극중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접하면서 ‘아,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이다. 아무리 위로 가려고 아등바등거리며 죽어라 애를 쓰지만 결국 다 거기서 거기인 거다. 저들이 추하고 못나고 별볼일 없이 보여도 저 모습이 내 모습 인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극단 골목길과 연출 박근형의 앙상블이 이뤄낸 기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내내 엄사장의 한마디가 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추락은 벼랑 끝에서 떨어진다고 해서 추락이 아니야. 추락이란 바로 넓은 곳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추락인기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