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nate.com/view/20130813n30941

 

 

[티브이데일리 유진모 편집위원]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은 그 촘촘한 구조와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탄탄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트렌디한 면에서 KBS2 ‘굿닥터’에 뒤져 5% 포인트 이상의 뒤진

시청률로 동시간대 2위에 턱걸이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열혈시청자들의 충성도와 애정은 각별하다.

이 드라마는 사실 비주얼 적인 측면에서 볼 때 눈으로 즐길 게 별로 없다. 무대는 죽은 최동성(박근형) 회장의

아내 한정희(김미숙 분)를 비롯해 그들의 자식들이 사는 대저택, ‘황금의 제국’인 성진그룹 사무실, 그리고

장태주(고수 분)의 에덴 사무실이 고작이다. 야외 신이라봐야 기껏해야 최 회장의 집을 밖에서 카메라에 담은

 것일 뿐 죄다 스튜디오 촬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지루하다거나 식상하다는 느낌을 주는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등장인물들의 대사 한 단어와 표정변화 하나에 몰두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다.

그 이유는 작가의 뛰어난 필력과 이를 뒷받침해 대사를 훌륭하게 소화해내 캐릭터를 풍성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해내는 출연배우들의 연기력에 있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황금의 제국의 패권을 노리는 경쟁자들,

그들에게서 선과 악을 이분법적 구도로 구분하는 것은 무리다. 누가 악인이고 누가 선인인지 구분이 안 되고

그들은 철저하게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양면의 탈을 쓰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악인인지 평범한 잣대로는 측정이 힘들다는데 있다.

 이들에게는 조금만치의 순수한 사랑도, 자선의 여유도, 용서와 화합의 자비도 없다.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향한 욕망의 파열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장태주는 아버지 장봉호(남일우 분)가 죽게끔 배후에서 조종한 최민재(손현주 분)에게 복수심을 품고 그와

 대척점에 선 최서윤(이요원 분)을 돕지만 성진그룹을 양분하자는 최민재의 제안을 받아 이내 최서윤에게

등을 돌리고 최민재의 손을 잡는다.

하지만 최민재가 다시 한정희와 손을 잡자 최서윤과 한정희의 헤게모니 싸움의 승리의 문을 열어줄 열쇠인

10억 달러를 쥐고 있는 장태주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 한설희(장신영 분)와의 결혼을 성사시키고 새로운 사업도

벌일 겸 필리핀 이민을 계획한다.

하지만 최민재가 장태주를 무너뜨릴 요량으로 그동안 최민재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고 그의 뒤를 돌봐준

건교부 장관 내정자 김광세 의원의 비리를 폭로하려 한다. 장태주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김 의원더러 장관 자리를

포기하라고 주문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한설희는 장태주를 돕기 위해 평소 자신의 몸을 탐내온 김 의원과

하룻밤을 보낸다.

그럼에도 김 의원이 장태주의 등을 치려하자 장태주는 김 의원을 죽인 뒤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 역시 사랑했던

한설희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쓰라고 주문하고 한설희는 순순히 이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장태주는 한정희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그가 가진 10억 달러가 꼭 필요했던 최서윤의 정략결혼 제안을

받아들인다.

사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선한 캐릭터다. 정의롭고 불의에 맞서는 설정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태주는 잔인하리만치

 차분하며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기준도 인간미도 없이 오로지 이기적인 결정만 있을 따름이다.

그가 한설희를 사랑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한설희의 사랑을 이용한다. 결혼에 관심

 없었던 그는 자신의 주적이었던 최서윤과의 정략결혼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자신의 목표, 황금의 제국으로 입성하는 주단을 그녀가 깔아주려 하기 때문이다.

원래 그가 아버지의 가난과 죽음 앞에서 분노하고 그래서 돈을 벌고자 아등바등 할 때만 해도 그의 몸부림에는

 타당성이 엿보였다. 하지만 에덴을 차리고 승승장구하는 과정에서 한설희의 충고를 무시하고 커다란 모헙을

 벌이면서 아버지를 죽인 최민재와 다름 없는, 피도 눈물도 없는 폭주를 할 때는 이미 그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남도 아닌 삼촌 최동성과 사촌동생 최서윤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가는 최민재는 패륜아처럼 보였다. 그는 겉으로는

동생을 죽음으로 이끌었고 자신과 아버지를 그룹에서 내친 이유 때문에 복수심을 불태웠지만 사실은 그 역시 결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던 황금의 제국을 차지할 욕망 때문이었던 것.

하지만 장태주와 달리 최민재에게는 최소한의 로맨스, 서정적인 사랑은 있었다. 그는 지난 10년간 병간호를 해온

 아내 곁을 떠나 한국은행장 딸과 정략결혼을 한다. 자신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냉정하고 매몰차게

보였던 그는 결혼식 뒤 전처의 납골당을 찾아 피눈물을 쏟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다.

어쩌면 더 악인은 최서윤과 한정희일지 모른다. 겉으로는 아버지가 일궈낸 그룹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최서윤의 그 목적을 위한 방법은 잔인하다. 서열상 사실은 그룹을 이어받았어야 할 장남

 최원재(엄효섭)를 개 부리듯이 부리는가 하면 언니와 형부를 쥐락펴락 하며 군림하고 올케 마저도 협박해가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꼭두각시로 만든다.

과연 형제애마저 던져버리고 형제의 서열마저 무시한 채 독재자로 군림하는 최서윤이 겉으로드러난 단아한 이미지와

회사를 살리고 죽은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주겠다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차분한 표정을 짓는 자기주장이 타당한 걸까?

 도덕적 인간적으로 올바른 걸까?

독하고 나쁘기로는 한정희 역시 별로 변명할 게 없을 듯하다. 한정희의 최동성과 그 집안을 향한 복수의 명분은

남편에 대한 복수다. 그녀의 전 남편이 최동성에 의해 죽음에 이르렀고 그가 죽자마자 한정희는 복수를 목적으로

 본심을 숨기고 최동성의 품에 안긴 뒤 그와 재혼했다.

그녀는 겉으로는 늙고 병든 최동성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수발을 들어줬고 비록 친자식은 아니지만 서윤의 형제들에게

 인자하고 자상한 엄마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언젠가는 최동성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기 위해 그 날을 기다리며

 발톱을 숨겨왔던 것.

드디어 최동성이 죽자 그녀는 성진그룹을 집어삼킬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최서윤과 정면대결 한다.

그러나 이렇게 치밀하고 지독한 그녀와는 달리 최동성은 한정희가 이미 임신한 뒤 시집와서 낳은 최성재를 친아들처럼

 대해줬고 최서윤 역시 형제 중 유일하게 최성재를 진심으로 대하며 각별한 애정을 쏟아왔다.

서윤 형제들 역시 한정희를 계모 취급하지 않고 충분히 존중하며 존경심을 보여왔다.

그래서 최성재는 한정희에게 음모를 멈추고 미국으로 떠나자고 제안했지만 한정희의 불같은 복수심은 가라앉을 줄

몰랐다. 현모양처의 부드럽고 인자한 미소 뒤에 숨은 악마의 야성같은 처절한 복수본능은 소름이 끼칠 만큼 무서웠다.

순박한 서민의 아들에서 무서운 괴물로 변한 장태주, 누구보다 가슴 아픈 사랑의 사연을 간직한 채 생존을 위해

아버지와 사랑하는 아내마저도 내친 채 사촌동생과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최민재, 가족마저도 믿을 수 없는 적으로

 등을 돌린 채 오직 아버지의 명예와 부로 쌓은 제국의 성을 지키고자 하는 최서윤, 그리고 빗나간 복수심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빼앗고자 하는 한정희. 이들의 얽히고설킨 총성 없는 생존경쟁과 예측불가능한 이합집산을

바라보는 시청자의 손에는 땀이 흥건하다.

우리 곁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다소 비현실적인 얘기지만 사실은 그게 재벌가의 냉정한 현실이고 그 속에 우리네 생활

속의 치열한 삶의 방식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황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더럽고 치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권력이 사람의 눈을 어떻게 멀게 하고 그래서 어떻게

 미치게 만드는가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그 더러운 욕망과 야욕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치열한 이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에 한숨짓게 되고 그래서 이 드라마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티브이데일리 유진모 편집위원 news@tvdaily.co.kr / 사진=티브이데일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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